여느때처럼 쏟아지는 잠으로 헤매던 한달여쯤의 아침이었나. 하지만 출근을 해야했기에 이내 곧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보통은 아침부터 TV를 켜두거나, 라디오 방송을 틀어두는데, 별로 귀를 기울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기엔 꽤나 정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디오 DJ의 교체로 인해 색다른 순서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덕분에 그날은 지각을 했다.
'파티 플래너로 일했지만, 지금은 흥미를 잃어서 법을 공부중이에요.' 라고 말하던 H를 만난건 지각한 날의 늦은 퇴근 길. 술 한잔 하자며- 꼬드기는 친구의 말에, 뭐 또 나를 불러내려고 그저 그런 말인가 싶어서 못이기는척 택시를 탔지만, 사실 또 기대를 안했던 것도 아니었거든.
자리에 도착했을때 목이 훤히 드러나는 숏트 컷 머리를 제외하고는 맘에 드는 면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던 H는, 자신이 먹던 젓가락을 건내주며 '이걸로 먹어요'라며 손을 내민다. 아마도 만난지 10초만이었나.
내 앞에 놓여있던건 먹다남은 순대볶음이었는데, 내가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으나 저녁을 거르고 일을 한 탓에 별 망설임 없이 젓가락으로 집어들었다. 아마도 만난지 15초 만이었나.
평범한 수요일의 밤이었으나, 취기가 올라서 춤을 추고 싶다는 친구녀석의 말에 별 저항없이 일어나서 조그만 클럽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중요한 회의가 있던 나는, 친구녀석만 데려다 놓고 나올 생각으로 걷는 중이었는데, H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전 내일 아침 일찍 미국에 가야해요'
'그럼 집에 가는 편이? 시간도 많이 늦었어요.'
'아뇨, 그래도 지금이 즐겁잖아요'
라며 웃는다.
맛의 깊이나 매력은 없지만 묘하게 손이 가던 순대볶음처럼, H의 말에 묘하게 마음이 설득이 되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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